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버나드 로 몽고메리 (문단 편집) === VS [[에르빈 롬멜]] ===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을 밀어낸 장군으로 유명하지만 둘을 묶어 라이벌이라 하기엔 둘에게 공통점이 별로 없다. 몽고메리는 롬멜의 기동전에 말려들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전장에서 아프리카 군단을 격파한 걸 보면 호적수라기보단 되려 극상성의 인물이다. 롬멜은 호전적으로 정찰하고 다양한 속임수를 써서 적을 속여 공격 기회를 만드는 걸 선호하는 지휘관이고, 몽고메리는 객관적으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될 때까지 오래 기다리면서 전력을 모아서 공격하는걸 선호하는 지휘관이다. 쉽게 말해 롬멜은 [[전격전|속전속결로 끝내기]], 몽고메리는 [[우주방어|기다리다가 힘이 충분히 모이면 확실하게 끝내기]]. [[발터 모델]]의 전술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또한 몽고메리가 북아프리카의 지휘관으로 배치됐을 때 이미 롬멜의 보급선은 너무 길어져서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병력 소모가 일어나고 연료도 없어 기동전을 할 수 없는 불리한 상황에 몰려 있었다. 만약 롬멜과 어느 정도 대등한 상황에 배치됐다면 몽고메리 또한 롬멜의 기동전과 속임수에 말려들어서 패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롬멜이 그러한 상황에 빠진 것도 안 그래도 영국 해군과 공군때문에 지중해 보급 라인이 불안정해지고 최고사령부는 소련에 신경쓰고 있는데,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는 당시 북아프리카 군단에는 해당되지 않는 모토로 무리하다가 북아프리카 군단의 전투력을 알아서 깎아먹어서 발생한 일이니 롬멜이 불리한 상황을 아쉬워할 것까진 없다. 야전군 사령관으로서 본국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적절한 방어 위치 사수나 충분한 보급 대책 없이 자신의 군대를 자동 소모의 길로 몰아넣는 것은 매우 큰 실책이기 때문. 물론 북아프리카 군단의 패망은 애당초 [[바르바로사 작전]] 실패 시점부터 예정된 거나 마찬가지였긴 하다. 그리고 야전 총사령관으로의 자질로도 차이가 극명한데, 롬멜과 몽고메리 둘 다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위아래 없이 덤비는 게 특징[* 몽고메리는 그 유명한 성깔머리 처칠에게 대든 기록이 있는 사람이다.]인데 그래도 몽고메리는 타 장성들과의 갈등으로 심각한 작전적 피해를 초래하지 않았지만[* 물론 여기엔 브래들리의 적절한 중재도 있었다.] 롬멜은 프랑스 침공때 부터 죽는 순간까지 갈등으로 자신의 예하부대에 큰 피해를 주었다. 프랑스에서는 일개의 사단장이 같은 집단군의 타 부대는 고려없이 막 나가다가 아라스에서 작살날 뻔 했으며 북아프리카에서는 폰 아르님과 얼마나 심하게 대립했는지 엘 알라메인과 횃불 작전 이후 독일군의 조직적 철수 및 반격작전에 큰 방해가 되었을 정도. 백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인데 폰 룬트슈테트와 방어기갑사단 문제로 미친듯이 싸우다가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 배치하여 초기 독일군 대응 실패를 초래하였으며 공격 이후에도 반격을 지휘하러 온 친위대 장성에 반대하고 폰 클루게 원수와 지휘권 작전문제로 미친듯이 싸우면서 시간을 보냈고 야전 최상급 지휘권의 부재는 독일군이 살기 위해 저항했다라고 표현될 정도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반격 및 수비작전 시행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